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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최소 상식 포인트

by 콘테 202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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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에 발생한 한국전쟁의 최소 상식 포인트를 통해 정리하고자 한다.

한국전쟁

6.25 전쟁 혹은 한국전쟁으로 불리는 이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은 당일 일요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이 사전 선전포고 없이 38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기습 침공하여 일어났다. 대한민국 측에는 UN군, 북한 측에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해 국제전으로 커졌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선언이 있을 때까지 3년간 이어졌으며 현재도 휴전 중에 있다. 

김일성의 적화통일 시도가 원인

전쟁을 일으키면 한반도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북의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의 도움을 받아 적화통일을 시도해 일어난 전쟁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러시아 정부에서 김일성이 소련에 지원을 요구하는 자료와 소련이 중국과 지원에 대해 논의한 기밀 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양상

김일성의 남침을 이용해 소련의 스탈린이 미국과 소련의 냉전 상태에서 동아시아의 승기를 잡으려한 대리전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소련이 전쟁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제3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때문에 소련이 보낸 파일럿들의 통신이 감청되었던 적도 있지만 미국과 UN이 의도적으로 모른 척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맥아더 장군

우리에게 인천 상륙 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 장군은 전쟁 당시 UN군 총사령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군인이지만 미국 입장에서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전쟁 당시 UN총사령관으로서 중국에 원자폭탄 투하를 기획하기도 했던 맥아더 장군은 전쟁을 중국으로 확전 시키려 했고, 전쟁 후 미국으로 전쟁 영웅으로 귀국했지만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등의 행동으로 해임되었다. 

징병제 원인

6.25 전쟁은 지금까지 휴전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원인이며, 대한민국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징병이 이루어지는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일본의 부흥

일본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거의 괴멸에 가까운 상태였으나 6.25 전쟁에 주변국으로서 전쟁특수를 통해 경제적으로 부흥을 이루게 되었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일본은 세계에서 손에 꼽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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